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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참고자료

고대 근동의 역사 13-16장

아마르나 시기, 제 19-20왕조의 이집트, 쇠퇴기, 말기:페르시아의 통치

 

구약배경13~16

아마르나시기

아텐숭배강요 - 아메노피스4세(아케나텐으로 바꿈:아텐에게 유익한사람,아내 네프레테트의 흉상이 서베를린의 박물관에), 헤르몬티스의 혼합주의(태양신 레 하라크티:지평선의 레-호루스) 통치6년에 수도를 테베와 멤피스 사이의 아마르나(아케타텐으로 불림:아텐의 지평선)로 이동, 12년뒤 버림받은 도시. 일출시간에 아텐숭배함. 아케나텐의 부하 아이의 무덤벽에 시편104편과 비교되는 찬송이 발견. 큰딸 메리타텐(아텐에게 사랑받는 자)의 남편 사카레(세멘카레)가 왕이 됨. 스타인도르프는 사카레가 아케나텐보다 먼저 죽었다고 주장149~151

아케나텐의 셋째 딸 안케센파텐과 결혼한 투텐카텐(아텐숭배저지하고 아문숭배 일으키며 투탄카문으로 개명)은 왕궁을 테베로 옮김. 투탄카문의 묘실 1922년 카타에 의해 발굴. 이어서 아케나텐의 유모 티이의 남편 아이가 왕이 됨, 자신을 ‘신의 아버지’라 부름. 투탄카문의 미망인과 결혼했다는 설도 있다. 18왕조 끝. 아케나텐에 대한 평가는 극과극, 시야가 좁은 공상가 혹은 전통의 굴레를 타파한 ‘역사상 최초의 개인’

14장 19,20왕조

아이의 뒤를 이어 하렘합 장군이 즉위(19왕조 창시). 아마르나를 무시하며 자신을 아메노피스 3세의 후계자로 자처함. 실제 통치기간은 1345~1318. 아텐의 신전 파괴하고 카르낙 신전의 두 탑문을 만듬. 모든 기념비에 아이의 이름 지우고 투탄카문에 자신의 이름 새김. 아이의 장례사원 뺏음. 이집트의 복지를 위해 신경 쓴 왕으로 석고로 만든관에 안치됨.

다른 장군인 람세스1세(레에게서 태어났다) 즉위. 카르낙 신전의 다주식 홀과 아비도스 대신전 착공 그러나 람세스 2세와 세티 1세에 의해 완공. 세티1세 즉위, 융커에 의하면 세트는 아바리스에 신전 그리고 고왕조까지 거슬러 올라감. 테베가 정치적 위상 잃어버림.

세티1세는 하렘합의 아시아 패권회복을 이어받아 신의 이름을 붙인 네 개의 부대로 편성, 보병은 전차부대로 합류. 카르낙 신전의 북부 벽에 전쟁사건 묘사 시작, 그러나 객관성은 투트모시스 3세의 연대기가 최고다. 가나안 최초 언급. 왕은 6륜 이두전차에 탐. 대부분의 포로가 턱수염으로 보아 셈족으로 추정, 벧산에 세워짐. 19왕조는 유프라테스까지 진출 못함. 세티1세의 건축물로는 아비도스의 신전, 오시리스에게 봉헌된 신전으로 보존상태가 최고다. 그의 무덤은 왕들의 무덤에서 가장 큰편이며 푸른색 지붕에 별들의 모양 찍혀 있고 설화석고로 만든 석관에 안치. 159

람세스 2세(67년의 통치1301~1234)즉위, 이집트의 마지막 부흥기, 최초의 원정에서 켈브강에 기념비 세움. 통치 5년에 히타이트의 무와탈리스와 가데스 부근에서 전투, 이겼다고 기록했으나 고작해야 비건 싸움. 1280년 핫투실리스 3세와 평화조약 맺음으로 종결, 이집트의 신전과 보가즈코이의 설형문자 서판에서 확인됨, 그러나 원본X. 1267년 하투실리스의 딸과 결혼하고 대왕비로 격상시키고 누비아 접경 아스원 아부심벨의 바위 신전 입구에 기념비 세움. 1200년경의 해양민족의 침입으로 히타이트 붕괴.

최남단에 아부심벨 건설, 아스원댐의 범람으로 인해 유네스코의 지원으로 현재의 위치로 옮김. 아바리스 재건한 뒤 람세스로 명명함. 160,161

프랑스의 학자 피에르 몽테에 의해 힉소스 시대의 아바리스, 21왕조의 타니스, 성경의 소안으로 확인됨. 세티가 시작한 카르낙의 다주식 홀 완공, 파리의 노틀담 성당보다 크다.

그러나 18왕조보다 예술적으로 떨어짐. 예외가 있다면 무덤의 벽화 한가지이다. 이전시기보다 더 깊은 신앙이 표현되어졌다. 이 신앙적 기풍은 '아니의 교훈'에 잘 표현됨. 이 시기부터 담화의 언어를 비문에 사용, 중 이집트어에서 신 이집트어로의 전환기.

테베 서부의 장례사원 라멧세움, 열 셋째 아들 메르넵타가 이어받음.

메르넵타 제위 5년에 해양민족의 이동으로 인한 리비아와 메쉬웨쉬의 공격 방어.

*해양민족: 13세기의 동 지중해(163P 참조)

카르낙의 신전비문과 카이로 박물관의 승전비에 승리 기념, 처음으로 이스라엘 언급된 석비로 이스라엘 승전비로 불린다. 아메노피스 3세의 기념비 뒷면에 기록. 162,163

세티2세가 메르넵타의 뒤를 이어 6년간 통치, 다음에는 메르넵타의 딸 타-우세레트와 결혼한 시프타가 왕이 됨. 아멘멧세스 쪽의 한 사람에 의해 옛 테베와 새 도읍 람세스 사이의 경쟁, 그의 무덤은 왕의 계곡, 십타 후에 팔레스타인 사람 이르수가 람세스에서 2년간 통치 그러나 기념물 없다. 20왕조의 창건자 세트나크트(세트는 강하다)에게 축출.

람세스 3세가 이었다. 32년간 치리한 람세스 3세가 신왕조의 마지막 왕이다. 메디테트 하부의 장례사원, 왕들의 계곡의 무덤, 고 이집트의 가장 오래된 파피루스인 할리스 파피루스등이 유적이다. 할리스파피루스는 신전들에 소장된 재산 목록이 나오며 확인 결과 알짜는 아문 신전에 다 있었다. 메디네트 하부의 신전 외벽에 람세스 3세가 해양 민족을 분쇄하는 장면의 주요적대 세력은 깃털장식의 투구를 착용한 펠레세트(블레셋)와 자카르이다. 해양민족은 패한 뒤 도르 남단의 팔레스타인 해안에 정착함. 쉬르다나는 이집트 편으로 나타난 걸로 보아 용병. 리비아와의 두 번의 전쟁에서도 승리(메디네트 신전에 묘사)하나 이 전쟁으로 팔레스타인의 패권 잃음. 블레셋이 이 틈에 가자, 아스글론, 아스돗, 에그론, 가드의 5도시 건설.

그 뒤에 8명의 왕이 약 80년간 람세스를 수도로 통치, 왕들의 계곡에 묻혔으나 왕비와 공주들은 왕비들의 계곡에 묻혔다. 기념물은 오직 무덤뿐. 람세스 11세는 30년 통치 그러나 종국은 모른다. 테베의 경쟁 궁중인 헤리호르(아문신전의 대사제로 구스의 왕자라는 칭호)보다는 21왕조를 창건한 스멘데스에 의해 축출. 165,166

15쇠퇴기

21왕조는 이중통치로 타나니와 테베에서 다스림. 창시자 스멘데스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 없다. 당시의 무력한 상황에 대해서 웬 아문의 여행 보고서에서 비블로스까지 항해했으나 무시당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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